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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October 13, 2011
북한 정치범 수용소 -김태진
   북한 정치범 수용소-김태진.pdf (168.7K) [9] DATE : 2012-04-24 17:04:41

북한 정치범 수용소

 
김태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 전 15호 요덕 수용소 수감자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의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강제 납치되어 수용된 사람들이 있는 곳을 관리소라고 부른다.
 
내가 1988년 수감되었던 요덕 정치범수용소는 ‘제15호 관리소’로 불리는데 공식 문서에는 ‘조선인민경비대 2915군부대’로 위장되어 있다. 당시 나와 함께 수감된 사람들은 대부분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 다한 사람들로서 의도하지 않은 문제로 민심이 어지러워졌을 경우, 이를 무마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 수감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어린 손자들까지 잡혀 들어와 그곳에서 나가지 못하고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적대계층, 즉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을 거쳐오며 숙청된 종파분자, 반당•반혁명분자, 일제시대의 지주, 친일파, 종교인 및 전쟁 전후 월남자 가족, 60, 70년대 북송교포 가운데 자유세계를 동경하고 찬양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수감자 다수가 노동당의 간부로 있다가 나중에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가족이 점차 주류를 이루었으며 특히 70, 80년대 김일성 우상화 과정에서 증가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는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다수의 유학생, 외교관들과 국내의 간부들이 밀물처럼 쓸어 들어 왔다. 그 후 조사에 의하면 90년대 식량난으로 탈북자들이 증가하자 중국으로부터 압송되는 탈북자 가운데 기독교를 믿었거나 남한으로 망명하려고 했던 자들이 대거 수용소로 수감되었다.
 
정치범수용소는 수감자들의 탈주와 소요방지를 위해 철저한 감시, 통제체계를 갖춰 운영하는데 외곽에는 경비병들이 물 샐 틈 없는 경계를 서고, 내부에서는 5인조의 체계로 서로 감시하는데 그 조에서 사고가 나면 연대 책임을 지우기에 서로가 감시를 한다. 탈주가 용이한 곳에는 전기철조망, 함정 등을 설치하지만 대부분 그곳까지 가지 못하고 경비병들에게 잡힌다. 그만큼 내부 감시가 철저히 진행되고 지형 또한 탈주가 용이하지 않은 험준한 곳이기도 하다. 탈주를 기도하다 발각되면 경비병들에 의해 무차별 사살되며 체포될 경우에는 수감자 교육용으로 공개총살을 한다.
일단 수용소에 수감되면 주민으로서의 권리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도 일체 박탈당한 채 생산력을 제공하는 도구로서 전락하게 된다. 보위부 납치 당시 공민권을 박탈당하여 선거와 교육받을 권리는 물론 식량, 생필품 배급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 결혼, 출산 등도 금지시키고 있으며 면회 및 서신연락 금지로 외부와 연락을 일체 차단하여 가족도 그 행방을 알지 못한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하루 일과는 수감자들이 새벽 5시 반까지 아침식사와 작업준비를 완료한 후 보위부원과 작업감독으로부터 인원점검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업은 5명 1조 단위로 할당량이 주어지는데 저녁 9시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간 정도이다. 점심식사는 밭으로 밥과 국을 날라다 먹일 때도 있고 각자 지참한 강냉이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저녁 6시경에 담당 보위부원이나 감독, 인민반장 등이 당일 할당된 작업 목표를 중간 점검하고 목표에 미달된 경우 작업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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